[(돌봄)]레터투레터 11. 바라보는 마음 (11.10, 가은)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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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편지,

바라보는 마음




혜성씨의 편지를 받고 머리 속에서 사랑의 원을 요리조리 굴려보느라 몇날 며칠을 보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지금, 여기 외에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데 오랜만에 여러 차원의 시공간을 헤매고 다닐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질문에 애써 답을 하자면 저도 밝은 부분을 먼저 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여러 문제에 대해서 가능성보다는 리스크를 먼저 떠올리고 할 수 있는 한 그것에 대비하려고 하는 걸 보면 어두운 부분을 먼저 보는 편인 것 같기도 해요. 사랑에 있어서도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사실 저는 러브서클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혜성님과 저의 접근법 차이일까요? 하지만 저 또한 혜성님의 경험과 지혜로부터 많이 배우고 또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답니다.) 사랑에 밝고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에는 쉽게 공감이 가는데 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저는 사랑을 어떤 힘force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사람, 관계 사이에서 움직이고 이동하는 힘이요. 힘은 크기와 방향, 속도를 가지는데 저는 사랑도 그렇게 느껴져요. 크기와 방향, 속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면서 의미가 부여되는 관계, 그 자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저의 사랑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혜성님이 소개해주셨던 <엄마 마음 설명서>라는 책을 읽었어요. 책의 서두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요. 엄마들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우리 사회에는 엄마들의 삶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말이 부족하다고 해요. 엄마라는 자리는 어떤 역할이나 직무의 개념을 넘어서지만 엄마가 되어 해내는 성취를 담는 단어나 표현이 충분하지 않아서 엄마들 스스로도 그것을 ‘사랑’이라는 말로 함축해버리곤 한다고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은 출퇴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육아라는 말로 다 표현하기에는 해야하는 일이 너무 많을 뿐더러 어떤 업무와 책임을 포함해 엄마로서 주어지는 다양한 관계를 소화해내야 하는 것 같아요. 이 일에는 매뉴얼도 없고 적절한 보상도 없고 마감도 없으니 사랑이 아니라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치고 힘들때도 있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찰나의 순간마다 사랑의 연료가 단숨에 차올라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때면 이 삶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사랑의 의미가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요즘은 나라는 사람도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온유가 뱃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화하며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된 지금까지 온유와 저의 관계가 발전했고, 또 엄마로서 맡게 되는 다양한 역할과 관계를 통해 저도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어릴 때는 누군가 나에 대해 설명하고 평가할 때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하는 괜한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 경험과 대화 속에 존재하는 저의 이런저런 모습들이 저의 진짜 모습일테니까요. 

아이들의 경우는 더 그런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온유를 신생아 시절부터 봐온 지인들로부터 ‘온유는 좀 다른 것 같다’, ‘온유가 어떻게 클지 정말 기대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물론 저에게 온유는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특별한 존재이지만 가족이 아닌 지인들이 그렇게 봐주는건 과연 뭘까 생각해봤어요. 애정어린 표현 중에 하나일지, 아니면 저의 시선으로 편집한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고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그런데 문득 그 특별함이 온유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봐주는 시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스럽고 기특한 것을 넘어서 특별하고 다르게 봐주는 눈빛과 마음이 온유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준 거예요.






같은 의미로 저와 남편, 그리고 온유가 만나게 되는 수많은 어른들이 온유를 믿어주고 사랑스러운 눈빛과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주는 만큼 온유도 이 세상을 믿고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베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때때로 저의 작은 행동과 말들이 이 아이가 성장하는 어느 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모든게 조심스러워지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를 믿고 바라보는 눈빛만은 지키자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요. 육아에 있어서는 언제나 걱정과 불안이 앞서지만 조금 심플하고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애써 다짐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아기가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보다는 평화로운 온기 안에서 자랐으면 해요. 엄마, 아빠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밝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11월 10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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