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죽고 싶은 사람도 살리는 위대한 힘이라는 가은씨의 편지를 읽고, 대번 제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이 하나 있었어요. ‘Love kills all. 사랑이 모든 것을 죽인다.’ 가은씨의 증언과는 상반되지만, 20대 초반부터 줄곧 제 마음에 품어온 문구입니다. 펑크 밴드의 반항적 구호 같은데, 그 당시에는 사랑을 조금 삐딱한 눈으로 본 것이 맞아요. 사랑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랑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조금 먹고 나니 사랑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됩니다. ‘Love kills all, though it also makes to live. 사랑이 모든 것을 죽이면서 동시에 살게 만든다.’고요. 사랑에 ‘죽이는 힘’이 있는 이유는 그 반대로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고 또 피워내는 ‘살리는 힘’도 함께 있어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삶이 태어나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처럼 사랑에도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하나의 큰 원 안에서 탄생과 죽음의 끝과 끝이 맞닿아 순환하는 모양으로요.
저 역시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애정,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연대, 식물과 동물을 향한 탐구, 일에 대한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한 애틋함은 쉬지 않는 샘처럼 마를새 없이 자꾸만 솟아납니다. 이 마음들이 사라지는 것은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재앙이에요.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매일 새로운 사랑을 쌓고 오랜 사랑을 살찌우면서 살고만 싶습니다. 가은씨 편지와 제 글을 번갈아 읽어보며 방금 재미난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요.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가은씨와 저의 접근법이 상당히 다르구나 싶어요. 가은씨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대답한다던가, 가은씨가 ‘어떤 태도로 사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저는 또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가은씨와 대화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살아보지 못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은씨의 고민과 태도에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사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즘 제가 푹 빠져있는 버섯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더 정확히는 ‘흰 균사체’인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곰팡이에요. 실 같은 균사가 모여 곰팡이 같은 모양의 균사체가 되고, 이 중에 공기 중으로 뻗은 균사의 끝에서 자실체라 하는 버섯이 생기는 거랍니다. 요즘은 온갖 책과 강연, 다큐멘터리까지 끌어모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버섯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에요. 야금야금 알아가는 조각 지식이지만, 이해할수록 마음이 더 갑니다. 하나의 음식 재료로만 생각했던 버섯이 탐구 대상이 되니, 제 안에선 그들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예전엔 ‘에구머니나, 곰팡이는 무조건 싫어! ’했었다면 이제는 자꾸만 더 그들의 세계에 입장하고 싶은 거 있죠. 이들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랍니다. 삶을 태어나게 하고, 끝난 삶을 수거해가요. 무려 1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구에서 생명이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쭉 그럴 거예요. 탄생과 소멸의 힘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에서 사랑을 많이 닮았습니다.
강연 [TED] Paul Stamets: 6 ways mushrooms can save the world, 2008 (한글 자막) 다큐멘터리 [Netflix] 환상의 버섯, 2019 (한글 자막)
수많은 종류의 곰팡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보통 땅이나 죽은 나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균근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들은 유기물질을 분해해 땅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공기 중 탄소를 포집해 다시 땅으로 되돌려 준답니다. 생태과학자 수잔 시마드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나무들도 대화를 나눈다고 해요. ‘Wood Wide Web 우드 와이드 웹’이라는 균근망을 통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나무와 나무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답니다. ‘야, 내가 벌레에 물려서 지금 아프다.’ 같은 정보들이요. 그러면 주변의 나무들은 잎에서 쓴맛이 나게 해서 벌레를 쫓는 등 이에 대한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고 해요. 또 균근망을 통해 탄소, 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전송함으로써 약한 나무를 돕기도 하는데요. '엄마 나무'가 자신의 '자식 나무'를 식별하고, 여분의 탄소를 전송하여 묘목의 생존율을 4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고 하네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Wood Wide Wed 우드 와이드 웹 [내셔널 지오그래픽] 나무들의 소통 네트워크, 2019
하지만 사랑이 파괴적인 것처럼, 곰팡이 역시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균의 감염체가 되기도 하거든요. 더러 동식물 모두를 병나게 하는 독성 균도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해요.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어려운 것은 대부분 세트로 존재한다는 점이 인생의 묘미입니다. 일상, 아이 그리고 심지어 버섯까지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은 외면하고 싶은 어려운 것을 포함하기에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 참 얄궂습니다. 다시 편지의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면, 저는 모든 일에서 어두운 부분부터 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죽음부터 떠올리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저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숙명이라고 먼저 받아들이고 나면, 태어나는 모든 것들은 밝게 빛나는 축제의 폭죽같습니다. 사랑이 탄생과 죽음으로 연결된 하나의 원이라면요, 가은씨는 어느쪽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인가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변덕 부리며 늘 새로움을 갱신하여 주니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받아들이고 ‘성장은 팔순까지’를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업으로 ‘이직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0년 동안 10개 넘는 조직을 넘나들며 일했습니다. 가장 최근엔 쉽게 퇴사가 어려운 동업을 시작하여 ‘씨드키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 번째 편지,
러브 서클
Look Up Look Down Photography
사랑은 죽고 싶은 사람도 살리는 위대한 힘이라는 가은씨의 편지를 읽고, 대번 제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이 하나 있었어요. ‘Love kills all. 사랑이 모든 것을 죽인다.’ 가은씨의 증언과는 상반되지만, 20대 초반부터 줄곧 제 마음에 품어온 문구입니다. 펑크 밴드의 반항적 구호 같은데, 그 당시에는 사랑을 조금 삐딱한 눈으로 본 것이 맞아요. 사랑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랑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조금 먹고 나니 사랑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됩니다. ‘Love kills all, though it also makes to live. 사랑이 모든 것을 죽이면서 동시에 살게 만든다.’고요. 사랑에 ‘죽이는 힘’이 있는 이유는 그 반대로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고 또 피워내는 ‘살리는 힘’도 함께 있어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삶이 태어나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처럼 사랑에도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하나의 큰 원 안에서 탄생과 죽음의 끝과 끝이 맞닿아 순환하는 모양으로요.
David Kovalenko
저 역시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애정,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연대, 식물과 동물을 향한 탐구, 일에 대한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한 애틋함은 쉬지 않는 샘처럼 마를새 없이 자꾸만 솟아납니다. 이 마음들이 사라지는 것은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재앙이에요.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매일 새로운 사랑을 쌓고 오랜 사랑을 살찌우면서 살고만 싶습니다. 가은씨 편지와 제 글을 번갈아 읽어보며 방금 재미난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요.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가은씨와 저의 접근법이 상당히 다르구나 싶어요. 가은씨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대답한다던가, 가은씨가 ‘어떤 태도로 사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저는 또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가은씨와 대화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살아보지 못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은씨의 고민과 태도에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Andrew Ridley
사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즘 제가 푹 빠져있는 버섯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더 정확히는 ‘흰 균사체’인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곰팡이에요. 실 같은 균사가 모여 곰팡이 같은 모양의 균사체가 되고, 이 중에 공기 중으로 뻗은 균사의 끝에서 자실체라 하는 버섯이 생기는 거랍니다. 요즘은 온갖 책과 강연, 다큐멘터리까지 끌어모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버섯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에요. 야금야금 알아가는 조각 지식이지만, 이해할수록 마음이 더 갑니다. 하나의 음식 재료로만 생각했던 버섯이 탐구 대상이 되니, 제 안에선 그들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예전엔 ‘에구머니나, 곰팡이는 무조건 싫어! ’했었다면 이제는 자꾸만 더 그들의 세계에 입장하고 싶은 거 있죠. 이들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랍니다. 삶을 태어나게 하고, 끝난 삶을 수거해가요. 무려 1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구에서 생명이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쭉 그럴 거예요. 탄생과 소멸의 힘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에서 사랑을 많이 닮았습니다.
강연 [TED] Paul Stamets: 6 ways mushrooms can save the world, 2008 (한글 자막)
다큐멘터리 [Netflix] 환상의 버섯, 2019 (한글 자막)
Joel & Jasmin Førestbird
수많은 종류의 곰팡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보통 땅이나 죽은 나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균근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들은 유기물질을 분해해 땅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공기 중 탄소를 포집해 다시 땅으로 되돌려 준답니다. 생태과학자 수잔 시마드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나무들도 대화를 나눈다고 해요. ‘Wood Wide Web 우드 와이드 웹’이라는 균근망을 통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나무와 나무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답니다. ‘야, 내가 벌레에 물려서 지금 아프다.’ 같은 정보들이요. 그러면 주변의 나무들은 잎에서 쓴맛이 나게 해서 벌레를 쫓는 등 이에 대한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고 해요. 또 균근망을 통해 탄소, 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전송함으로써 약한 나무를 돕기도 하는데요. '엄마 나무'가 자신의 '자식 나무'를 식별하고, 여분의 탄소를 전송하여 묘목의 생존율을 4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고 하네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Wood Wide Wed 우드 와이드 웹 [내셔널 지오그래픽] 나무들의 소통 네트워크, 2019

Michael Hull
하지만 사랑이 파괴적인 것처럼, 곰팡이 역시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균의 감염체가 되기도 하거든요. 더러 동식물 모두를 병나게 하는 독성 균도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해요.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어려운 것은 대부분 세트로 존재한다는 점이 인생의 묘미입니다. 일상, 아이 그리고 심지어 버섯까지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은 외면하고 싶은 어려운 것을 포함하기에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 참 얄궂습니다. 다시 편지의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면, 저는 모든 일에서 어두운 부분부터 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죽음부터 떠올리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저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숙명이라고 먼저 받아들이고 나면, 태어나는 모든 것들은 밝게 빛나는 축제의 폭죽같습니다. 사랑이 탄생과 죽음으로 연결된 하나의 원이라면요, 가은씨는 어느쪽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인가요?
10월 15일
혜성 드림
글 | 문혜성 goldpricepergram@gmail.com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변덕 부리며 늘 새로움을 갱신하여 주니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받아들이고 ‘성장은 팔순까지’를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업으로 ‘이직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0년 동안 10개 넘는 조직을 넘나들며 일했습니다. 가장 최근엔 쉽게 퇴사가 어려운 동업을 시작하여 ‘씨드키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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