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인생이 얼굴에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의 혜성씨 모습에 그때의 즐거움과 평화로움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7년 전에 혜성씨에게서 느꼈던 따뜻함도 어릴 때부터 쌓아온 모습 중 하나였구나 싶어요. 혜성씨를 조금 더 알게 된 기분입니다. 제 얼굴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 궁금하네요. 혜성씨가 얘기하셨듯이 사랑은 제 인생에도 궁극의 주제에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특히나 저에게는 사랑의 의미,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사랑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니 삶의 태도들도 함께 달라지는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에 따라 제 얼굴도 조금은 변했을지 궁금하네요. 사실 아기를 낳기 전의 삶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만큼 온유가 저에게 굉장히 큰 존재라는 뜻인거겠죠.
아기를 낳은 후에 사랑에 대해 더욱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요. 아마도 사랑의 장면들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드라마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시작되었죠. 저와 남편을 포함해 모든 가족들이 아기에게 무한한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어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제 몸 조차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저 뜨거운 생명체에 불과한 신생아를 보며 모두가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처음보는 얼굴들이었어요. 남편의 표정도요! 제 핏줄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고 여린 생명체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인지 새삼 궁금했습니다.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말이 눈 앞에 그대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받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아직은 사람이라고 부르기에 미숙한 존재라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 의지가 생기면서부터는 한 사람으로서 상호 관계가 형성되어서 그저 ‘존재’로 사랑받았던 시절에서 ‘여러가지 이름이 붙은 사랑’을 주고받게 되는 것 같아요. 치약을 대여섯 번씩 짜면서 떼를 써도, 다 먹지도 않을 밥을 가득가득 담아달라고 고집을 부려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해요. "그만 좀 해!"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라도 참고 이 아이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마음 속 깊이 차 있는 사랑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런 순간에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노력해야 합니다(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상대로부터 출발하는 사랑이라고 했던 건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기 보다는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에 가까워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틈틈히, 놀면서도 책을 읽어주면서도 훈육을 할 때에도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들끼리야 화를 내고 싸워도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한마디로 오해를 풀고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심지어 본인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부모의 사랑을 오해하거나 믿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더라고요.
한 편으로는, 친구들이 저에게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어떻게 이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면 여전히 짧고 정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그냥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결정에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나를 나 그대로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기쁠 때나 화를 낼 때, 혹은 일과 학업이 잘 풀릴 때나 그렇지 않을 때, 심지어는 예쁘게 잘 차려입었을 때나 초라한 모습일 때나 이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없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언제나 가장 솔직한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에야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깨달아요. 아마 저도 비슷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던 거겠죠. 그 전까지는 사실 상대의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 같은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의 사랑이 더 중요했거든요. 제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방식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신혼 초에 남편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같이 봉사활동 같은 걸 해보고 싶다고요. 그때 저는 어린이 작업실 기획에 한참 몰두해 있어서 굉장히 바쁘기도 했고, 그 프로젝트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의적으로 사회 봉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봉사를 위한 봉사는 하고 싶지 않다, 일을 통해서나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행동이 진짜 봉사라고 생각한다며 그의 제안을 반박하고 에둘러 거절하였죠. 그런데 제가 온유를 낳고 5-6개월 정도 되었을 때쯤 문득 온유가 조금만 더 크면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온유를 향한 사랑이 넘치도록 컸고, 그럴수록 여러가지 상황의 어려움으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모두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또 온유를 통해, 주는 사랑의 기쁨이 얼마나 크고 충만한지 알게 되어서 온유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제서야 남편이 봉사활동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노 요코가 그리고 쓴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을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노 요코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뒤로 갈수록 이토록 명쾌하고도 뜨거운 사랑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에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겠지만 혹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팔자이고 사람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던 제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했던 생각이 뭔 줄 아세요? 오래 살고 싶다. 남편의 손을 잡고 마음 속으로 ‘지금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오래 살면서 이 사람과 인생의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고 외쳤어요. 그리고 온유를 낳고 나서는 정말 제대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게 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죽고 싶은 사람도 살리는 위대한 힘이에요!
8월 29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아홉 번째 편지,
그래도 널 사랑해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인생이 얼굴에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의 혜성씨 모습에 그때의 즐거움과 평화로움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7년 전에 혜성씨에게서 느꼈던 따뜻함도 어릴 때부터 쌓아온 모습 중 하나였구나 싶어요. 혜성씨를 조금 더 알게 된 기분입니다. 제 얼굴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 궁금하네요. 혜성씨가 얘기하셨듯이 사랑은 제 인생에도 궁극의 주제에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특히나 저에게는 사랑의 의미,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사랑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니 삶의 태도들도 함께 달라지는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에 따라 제 얼굴도 조금은 변했을지 궁금하네요. 사실 아기를 낳기 전의 삶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만큼 온유가 저에게 굉장히 큰 존재라는 뜻인거겠죠.
아기를 낳은 후에 사랑에 대해 더욱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요. 아마도 사랑의 장면들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드라마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시작되었죠. 저와 남편을 포함해 모든 가족들이 아기에게 무한한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어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제 몸 조차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저 뜨거운 생명체에 불과한 신생아를 보며 모두가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처음보는 얼굴들이었어요. 남편의 표정도요! 제 핏줄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고 여린 생명체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인지 새삼 궁금했습니다.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말이 눈 앞에 그대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받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아직은 사람이라고 부르기에 미숙한 존재라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 의지가 생기면서부터는 한 사람으로서 상호 관계가 형성되어서 그저 ‘존재’로 사랑받았던 시절에서 ‘여러가지 이름이 붙은 사랑’을 주고받게 되는 것 같아요. 치약을 대여섯 번씩 짜면서 떼를 써도, 다 먹지도 않을 밥을 가득가득 담아달라고 고집을 부려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해요. "그만 좀 해!"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라도 참고 이 아이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마음 속 깊이 차 있는 사랑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런 순간에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노력해야 합니다(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상대로부터 출발하는 사랑이라고 했던 건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기 보다는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에 가까워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틈틈히, 놀면서도 책을 읽어주면서도 훈육을 할 때에도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들끼리야 화를 내고 싸워도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한마디로 오해를 풀고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심지어 본인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부모의 사랑을 오해하거나 믿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더라고요.
한 편으로는, 친구들이 저에게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어떻게 이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면 여전히 짧고 정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그냥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결정에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나를 나 그대로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기쁠 때나 화를 낼 때, 혹은 일과 학업이 잘 풀릴 때나 그렇지 않을 때, 심지어는 예쁘게 잘 차려입었을 때나 초라한 모습일 때나 이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없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언제나 가장 솔직한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에야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깨달아요. 아마 저도 비슷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던 거겠죠. 그 전까지는 사실 상대의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 같은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의 사랑이 더 중요했거든요. 제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방식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신혼 초에 남편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같이 봉사활동 같은 걸 해보고 싶다고요. 그때 저는 어린이 작업실 기획에 한참 몰두해 있어서 굉장히 바쁘기도 했고, 그 프로젝트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의적으로 사회 봉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봉사를 위한 봉사는 하고 싶지 않다, 일을 통해서나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행동이 진짜 봉사라고 생각한다며 그의 제안을 반박하고 에둘러 거절하였죠. 그런데 제가 온유를 낳고 5-6개월 정도 되었을 때쯤 문득 온유가 조금만 더 크면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온유를 향한 사랑이 넘치도록 컸고, 그럴수록 여러가지 상황의 어려움으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모두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또 온유를 통해, 주는 사랑의 기쁨이 얼마나 크고 충만한지 알게 되어서 온유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제서야 남편이 봉사활동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노 요코가 그리고 쓴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을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노 요코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뒤로 갈수록 이토록 명쾌하고도 뜨거운 사랑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에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겠지만 혹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팔자이고 사람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던 제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했던 생각이 뭔 줄 아세요? 오래 살고 싶다. 남편의 손을 잡고 마음 속으로 ‘지금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오래 살면서 이 사람과 인생의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고 외쳤어요. 그리고 온유를 낳고 나서는 정말 제대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게 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죽고 싶은 사람도 살리는 위대한 힘이에요!
8월 29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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