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레터투레터 6. 내가 주고 싶은 애정 말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관심 (8.4, 혜성)
2021-09-24
조회수 1211
여섯 번째 편지,
내가 주고 싶은 애정 말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관심
지금은 그나마 반강제적으로 식물 선반이 정리되고 있는데요. 처음 씨앗 발아를 시작한 해에 저희집은 그야말로 식물 잡화점이었습니다. 길러야 한다는 생각까진 길게 못 하고, 발아시켜보고 싶은 모든 씨앗을 싹 틔웠거든요. 채소며 허브 그리고 다육 식물까지 관심이 간다 싶으면 씨앗을 다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산책하다 발견한 씨앗을 줍는 것은 물론이고, 과일을 먹고 나온 씨앗까지 모았답니다. 대부분 발아에 성공하는 편이었는데, 그 뒤가 문제더군요. 식물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천차만별이었고요.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식물들이라 초기 관리에 성공했다 치더라도 그 뒤에 성체까진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지구의 이곳과 저곳에서 온 식물들을 한 선반 위에 두고 같은 조건 아래 ‘너희가 알아서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은 저의 무지이자 이기심이었습니다.
식물을 잘 키우고 싶으면 그들의 자생지를 생각하라는 말이 있어요. 어디서 왔는지를 떠올리면, 그 식물이 좋아하는 최적의 환경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자생지를 생각해보란 말은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요즘 플랜테리어의 대표 식물이기도 한 몬스테라는 비교적 해가 적은 실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순하게 자라는 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밀림에서 자라는 식물이라서인데요. 밀림은 워낙 수목이 빽빽해 땅과 가까울수록 큰 나무들에 가려 빛이 적어진다고 해요. 큰 나무에 붙어 기생하는 몬스테라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의 면적이 아주 넓어요. 폭우와 바람을 견디기 위해 잎에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아래 자리에 위치한 잎까지 빛이 닿을 수 있도록 구조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적은 빛으로 살아남도록 환경에 적응해왔기에 오히려 너무 밝은 환경에서는 잎이 자연스럽게 찢어지고 구멍이 넓어지면서 빛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을 조절한답니다.
'우리는 간혹 본인이 주고 싶은
애정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애초에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파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길들일라치면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일도 마찬가지죠. 제가 선반에 모든 식물을 한데 모아놓고는 잘 자라주었으면 했던 바람처럼 우리는 간혹 본인이 주고 싶은 애정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의례 필요한 관심과 사랑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아낌없이 퍼부은 다음 상대가 내 뜻과 다르면 쉽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절망하고 분노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연인 사이에 또 친구 사이에, 우린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런 흔한 오해를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올바른 애정은 무엇일까요?
그런데요, 또 의외로 아주 기본이 되는 바탕만 맞춰준다면 식물은 본인이 자리한 환경에 따라 제 지혜를 총동원해 자기를 맞추기도 합니다. 식물의 항상성 때문인데요. 살기 위해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가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거예요. 화분에 담긴 나무는 그만큼 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작게 자라고, 잎의 색을 바꿔서 빛을 더 많이 끌어들이거나, 먼저 나온 이파리를 떨구고 새로 나온 잎에 영양분을 더 몰아주면서요. 몬스테라 같은 경우도 그래요. 품종에 따라 크게는 18m까지도 자라는 덩굴식물이지만, 나무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화분에 지주대를 세워주지 않으면 몬스테라는 제 몸집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 않아요.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몸을 바꿔가며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곤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존중해주면, 상대 역시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지 않을까 조금은 순진하게 믿어보고 싶습니다. 서로가 한 발짝 물러서 양보하면 두 발자국만큼의 여유를 통해 더 넓은 관점으로 상대를 자세히 보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 기대어 있는 사람인(人)이 생각나네요.
지난 겨울 읽었던, <랩걸>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소개하고 싶어요. 번역된 한글 제목도 매력적이지만, <The Story of More>라는 영어 원서의 제목 또한 인상적이었어요. 책은 전반적으로 지구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에 있어 아주 섬세하고 조곤조곤하게 우리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지구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방대한 데이터를 기초하여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챕터에는 우리가 풍요로워질수록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지구의 르네상스를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제안해요. 작가는 “보아야 할 것은 당신의 주위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이다.”라는 외젠 들라쿠루아의 말을 인용하며, 모든 질문에 있어 나를 먼저 돌아보고, 주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나의 풍요와 낡은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상대의 안녕까지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결국 나를 다시 재부팅하는 과정을 필요로하는 것 같아요.
'나의 풍요와 낡은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상대의 안녕까지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가은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중년의 신사분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에티켓보단 어린아이의 기분을 살피는 여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애정 말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관심에 집중할 수 있으면 합니다. 서로가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는 언젠가 중간의 어떤 적당한 선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추신. 가은씨는 언제나 온유를 관찰하고, 온유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 들어주는 엄마에게서 자라는 아이는 작은 참새처럼 재잘재잘 말이 많잖아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될 것 같아 소년 온유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변덕 부리며 늘 새로움을 갱신하여 주니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받아들이고 ‘성장은 팔순까지’를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업으로 ‘이직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0년 동안 10개 넘는 조직을 넘나들며 일했습니다. 가장 최근엔 쉽게 퇴사가 어려운 동업을 시작하여 ‘씨드키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편지,
내가 주고 싶은 애정 말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관심
지금은 그나마 반강제적으로 식물 선반이 정리되고 있는데요. 처음 씨앗 발아를 시작한 해에 저희집은 그야말로 식물 잡화점이었습니다. 길러야 한다는 생각까진 길게 못 하고, 발아시켜보고 싶은 모든 씨앗을 싹 틔웠거든요. 채소며 허브 그리고 다육 식물까지 관심이 간다 싶으면 씨앗을 다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산책하다 발견한 씨앗을 줍는 것은 물론이고, 과일을 먹고 나온 씨앗까지 모았답니다. 대부분 발아에 성공하는 편이었는데, 그 뒤가 문제더군요. 식물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천차만별이었고요.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식물들이라 초기 관리에 성공했다 치더라도 그 뒤에 성체까진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지구의 이곳과 저곳에서 온 식물들을 한 선반 위에 두고 같은 조건 아래 ‘너희가 알아서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은 저의 무지이자 이기심이었습니다.
Mar Núñez
식물을 잘 키우고 싶으면 그들의 자생지를 생각하라는 말이 있어요. 어디서 왔는지를 떠올리면, 그 식물이 좋아하는 최적의 환경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자생지를 생각해보란 말은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요즘 플랜테리어의 대표 식물이기도 한 몬스테라는 비교적 해가 적은 실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순하게 자라는 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밀림에서 자라는 식물이라서인데요. 밀림은 워낙 수목이 빽빽해 땅과 가까울수록 큰 나무들에 가려 빛이 적어진다고 해요. 큰 나무에 붙어 기생하는 몬스테라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의 면적이 아주 넓어요. 폭우와 바람을 견디기 위해 잎에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아래 자리에 위치한 잎까지 빛이 닿을 수 있도록 구조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적은 빛으로 살아남도록 환경에 적응해왔기에 오히려 너무 밝은 환경에서는 잎이 자연스럽게 찢어지고 구멍이 넓어지면서 빛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을 조절한답니다.
'우리는 간혹 본인이 주고 싶은
애정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애초에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파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길들일라치면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일도 마찬가지죠. 제가 선반에 모든 식물을 한데 모아놓고는 잘 자라주었으면 했던 바람처럼 우리는 간혹 본인이 주고 싶은 애정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의례 필요한 관심과 사랑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아낌없이 퍼부은 다음 상대가 내 뜻과 다르면 쉽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절망하고 분노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연인 사이에 또 친구 사이에, 우린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런 흔한 오해를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올바른 애정은 무엇일까요?
Josh Duke
그런데요, 또 의외로 아주 기본이 되는 바탕만 맞춰준다면 식물은 본인이 자리한 환경에 따라 제 지혜를 총동원해 자기를 맞추기도 합니다. 식물의 항상성 때문인데요. 살기 위해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가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거예요. 화분에 담긴 나무는 그만큼 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작게 자라고, 잎의 색을 바꿔서 빛을 더 많이 끌어들이거나, 먼저 나온 이파리를 떨구고 새로 나온 잎에 영양분을 더 몰아주면서요. 몬스테라 같은 경우도 그래요. 품종에 따라 크게는 18m까지도 자라는 덩굴식물이지만, 나무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화분에 지주대를 세워주지 않으면 몬스테라는 제 몸집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 않아요.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몸을 바꿔가며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곤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존중해주면, 상대 역시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지 않을까 조금은 순진하게 믿어보고 싶습니다. 서로가 한 발짝 물러서 양보하면 두 발자국만큼의 여유를 통해 더 넓은 관점으로 상대를 자세히 보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 기대어 있는 사람인(人)이 생각나네요.
지난 겨울 읽었던, <랩걸>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소개하고 싶어요. 번역된 한글 제목도 매력적이지만, <The Story of More>라는 영어 원서의 제목 또한 인상적이었어요. 책은 전반적으로 지구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에 있어 아주 섬세하고 조곤조곤하게 우리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지구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방대한 데이터를 기초하여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챕터에는 우리가 풍요로워질수록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지구의 르네상스를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제안해요. 작가는 “보아야 할 것은 당신의 주위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이다.”라는 외젠 들라쿠루아의 말을 인용하며, 모든 질문에 있어 나를 먼저 돌아보고, 주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나의 풍요와 낡은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상대의 안녕까지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결국 나를 다시 재부팅하는 과정을 필요로하는 것 같아요.
'나의 풍요와 낡은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상대의 안녕까지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가은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중년의 신사분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에티켓보단 어린아이의 기분을 살피는 여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애정 말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관심에 집중할 수 있으면 합니다. 서로가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는 언젠가 중간의 어떤 적당한 선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추신. 가은씨는 언제나 온유를 관찰하고, 온유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 들어주는 엄마에게서 자라는 아이는 작은 참새처럼 재잘재잘 말이 많잖아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될 것 같아 소년 온유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8월 4일
혜성 드림
글 | 문혜성 goldpricepergram@gmail.com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변덕 부리며 늘 새로움을 갱신하여 주니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받아들이고 ‘성장은 팔순까지’를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업으로 ‘이직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0년 동안 10개 넘는 조직을 넘나들며 일했습니다. 가장 최근엔 쉽게 퇴사가 어려운 동업을 시작하여 ‘씨드키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진 | 정태윤 jeongtaeyoona@gmail.com
편집 | 씨드키퍼
© seedkeeper
이 게시물의 글과 사진을 허락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활용에 대한 요청 및 질문은 iam@seedkeeper.kr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