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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아카이브]기록상점 <레터 투 레터 letter to letter>

2022-01-06
조회수 2325





밝은 빛을 따라서 
우리가 과연 흐름에 올라탔을까? 자문해보면 살짝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다. 서퍼가 파도를 타듯 자유자재로 유영하며 노는 역동적인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나 가만히 살펴보자니 식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이 빛을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제 몸을 키우듯 우리도 밝은 빛을 따라 조용히 자라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식물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제품과 콘텐츠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식물이라는 테두리를 기준으로 삼고 그 안과 밖을 넘나들며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중 하나가 웹사이트의 lifekeeper 페이지에서 연재되었던 <레터 투 레터>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딱 이거다!’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아 이름 짓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그때 ‘레터 투 레터’라는 멋진 이름을 선물해준 기록상점 매니저님들께 감사드린다. 
편지에서 편지로 더 긴 대화가 되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완벽하게 담은 이름이다.  



우리는 브랜드를 처음 구상하면서부터 줄곧 식물을 키우는 것과 육아에 대한 공통분모를 다루고 싶었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과 콘텐츠를 브랜딩했던 경험 덕분에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 연결고리였는데, 그 두 가지가 매우 닮아있다는 점에서 함께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았다. *어린이 콘텐츠 기획자 서가은 님과 함께 식물과 아이라는 대상을 향한  ‘돌봄과 관찰’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했고, 씨드키퍼 웹사이트에 글을 번갈아 연재하는 꽤 긴 호흡의 프로젝트로 첫 발을 내딛었다. <레터 투 레터>의 시즌 1은 세 살의 아이를 기르는 가은씨와 어린 식물들을 키우는 씨드키퍼가 주고받는 편지글이다. 가은씨는 보통 육아 에피소드에서 생기는 마음과 다짐을 적어 보냈고, 씨드키퍼는 이를 보고 떠오르는, 나누고 싶은 식물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전한다. 이제 막 기획 단계를 지나 두어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을 즘 연남동 기록상점에서 팝업스토어 제안을 받았다. 기록상점이 제안한 것은 일정 기간동안의 제품 판매였지만, 우리는 그들이 기록 콘텐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공간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팝업보다는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아직 진행 중인 프로젝트지만, 이곳에서 <레터 투 레터> 전시가 진행된다면, 이번 가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어울릴 공간과 콘텐츠는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스토리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레터 투 레터>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지를 읽어보세요.








레터 투 레터, 끝나지 않은 편지 
서가은 님과 씨드키퍼 그리고 기록상점이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였기에 하모니가 중요했다. 공간의 특색과 목적을 충분히 살리면서 그 안에 콘텐츠를 녹여내는 것이 고민의 핵심이었다. 2층부터 4층까지 총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된 기록상점이 시작되는 2층을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원래 주택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기에 한 층 전부라 해도 3-4평 정도의 방 2개와 작은 거실처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보니 영리한 구성이 필요했다. 작은 공간이 가진 오밀조밀하고 아늑한 느낌과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고 싶었다. 그 의도가 잘 구현되기만 한다면 작은 공간은 더 이상 작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레터보드는 A룸에 놓였다. 전시 첫 날부터 여러 개의 엽서가 붙은 것을 보고 놀랐다. 이곳에 놓인 어떤 마음은 귀엽고 또 어떤 마음은 아프다.


텍스트 위주의 전시는 디스플레이가 눈에 잘 띄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쉽다는 까다로움이 있다. 관람객이 오래 머물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A4 한 장 분량의 편지글을, 그것도 여러 편의 글을 한 번에 전시하려다 보니 텍스트를 보여주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민을 겹겹이 쌓던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머릿속을 싹 비웠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무대 위로 올리고, 다른 것들은 보조적인 역할로 두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가 선택한 중요한 것 하나는 관람객의 ‘돌봄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것 하나만 마음에 담고 갈 수 있다면 가장 뿌듯할 것 같았다. 돌봄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쓰는 사람의 책상’이었다. 전시된 편지글을 감상한 후에는 앉아서 직접 엽서를 쓰고 갈 수 있는 책상과 의자를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이곳에 기록해두고 갈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비로소 기획한 사람들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함께 쌓는 기록 전시가 시작되었다. 







마음을 담은 메세지 
웹사이트에 번갈아 쓰는 편지글을 연재하면서, 의도치 않았지만 매번 서로 책을 추천해주곤 했다. 언젠가 영감이 되었던 책, 상대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았는데, 사실 이 편지들은 당사자 둘만이 아닌 모두를 향한 것이기도 했기에 전시를 통해 책들도 함께 소개하고 싶었다. 편지글을 감상하고 자신의 기억을 남긴 후, 전시의 여운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도록 편지의 내용을 닮은 씨앗과 책을 함께 큐레이션해 배치했다. 우리가 왜 이 씨앗과 책을 소개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감사, 사랑, 응원 등의 메세지를 담았다.





사진 제공: 기록상점


우리가 희망하는 커뮤니티 
코로나19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가 없고 거리두기가 계속 4단계에 머물러 있어 전시 기간 동안 워크숍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기록상점 측에서 요청을 하시기도 했고, 우리도 꼭 진행하고 싶었지만 무척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고민 끝에 단 한 번이라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던 이유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정말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온라인 중심의 활동을 하면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오프라인에 쏟는 이유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에게서 끝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품이나 콘텐츠를 기획할 때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도움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처음엔 우리에게서 나왔을지 몰라도 결국 어느 시점엔 우리를 넘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서 그 답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향을 계속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사람들을.






전시장 곳곳에는 씨드키퍼 팀이 씨앗부터 기른 식물을 놓았다. 언제나 느끼지만, 식물이 있는 공간에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이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이 초록의 에너지를 듬뿍 느끼고 갔으면 했다.


팝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 3. 전시형 
앞선 두 번의 팝업과는 다르게, 이번엔 제품 판매가 아닌 경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공간과 구성을 기획했다.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라면 텍스트 자체를 전시한다는 것, 넓지 않은 공간이 다시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 별도 가구를 새로 구매하거나 제작하지 않고 현장에 있는 가구들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전시되는 편지글은 총 네 편으로 하나의 편지는 짧은 것이 약 1,600자 정도 되었다. 아주 긴 글이라곤 할 수 없지만, 이것을 한 호흡에 4편이나 읽는다 생각하면 절대 적은 활자 수가 아니었다. 무엇 보다 앉아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서 있을 경우 집중이 어려울 수 있었다. 관람객이 가져갈 수 있는 인쇄물 형태로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럴 경우 오히려 더 글이 읽힐 확률이 낮을 것 같았다.
 







네 편의 편지는 모두 한 흐름으로 연결되니 한 자리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하고, 가독성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글자 크기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읽는 자세가 불편하지 않도록 전시물의 위치도 눈높이에 맞추기로 했다. 이제 편지글을 어떤 모습으로 디스플레이할지가 관건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조건은 기록상점에서 기존에 사용중인 가구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조건이 한계가 되지 않도록 그 형태를 최대한 활용해보고 싶었다. 편지들을 거치할 수 있는 가구로 선택된 것은 벽을 덮는 길다란 선반장이었다. 이 선반에 편지들을 길게 늘어뜨려 걸칠 수 있도록 보드를 만들게 됐는데, 택배 박스와 길다란 목재를 사용해 직접 제작했다. 수일을 고민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대부분의 전시가 그렇듯이 폼보드나 아크릴 등에 출력하면 편리하고 깔끔하지만, 전시가 끝나고 나면 덩치만 커다란 쓰레기 더미에 불과하다. 튼튼해서 언젠가는 쓰겠지 싶어 보관해뒀던 이케아의 도톰하고 깨끗한(!) 택배 박스를 자르고, 출력한 편지글 뒷면에 덧대 페이퍼보드를 만들었다. 사이즈에 맞춰 재단된 목재에 끼우니 씨드키퍼식 거치대가 완성됐다.





B룸은 오로지 씨앗과 책의 공간이다. 전시된 책에 나누고 싶은 내용은 북클립으로 표시하고 또 밑줄을 그어놓았다. 대화의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넓지 않은 공간이 나눠진 경우 전시를 감상하는 흐름이 끊길 것이 우려가 되었고, 한 번 몰입이 떨어지면 다시 흥미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각 방마다 콘텐츠를 따로 구성할 수 밖에 없었다. 전시는 A룸에서 시작해 B룸으로 이어지고 다시 라운지에서 마무리되는데, A룸에서는 전시된 네 편의 편지를 읽고 '돌봄과 관찰'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기록해볼 수 있다. 앞에 놓여진 레터보드에 기록을 남겨도 좋고, 가져갈 수도 있다. B룸에서는 편지에서 발췌한 짧은 글과 함께 추천하는 씨앗과 도서를 함께 감상하고, 밖으로 이어지는 라운지에서는 씨앗키트와 함께 씨앗보드, 더불어 기록상점의 기록 도구들까지 만끽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기록상점과 함께한 전시 <레터 투 레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기억 자산이 쌓였다. A룸의 레터보드에는 200명이 넘는 사람들의 기억이 남았다. 그 글의 깊이와 농도는 애초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오며 가며 관람객 중 몇 분이 레터보드 앞에서 훌쩍이는 것을 봤다. 우리가 받은 감동은 구태여 말할 것이 있을까? ‘인생을 놓아두고 갔구나, 추억을 남겨두고 갔구나’ 싶어, 그들이 기꺼이 나눠준 예쁜 마음들에 가슴 한편이 저릿해진다. 엽서들은 따로 모아 웹페이지에 올릴 예정이다. 우리만 보고 책장에 넣어두기엔 너무나 아깝다. 우리의 레터 투 레터 프로젝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autumn exhibition & pop-up] letter to letter

기록상점 2층 라운지

2021.9.1 - 10.17




글 | 씨드키퍼          사진 | 정태윤 jeongtaeyoo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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